초봄에는 들일이 그리 바쁘지않아
참꽃이 피면 엄마들은 뒷산으로 올라
참꽃(진달래) 따서 설탕을 넣고 재어두었다가
기침에 좋다시며 식구대로 나눠먹는 일은 매년 되풀이되었습니다.

이어 두릅이 나올 때면
새벽밥먹여 학교보내는 아이들 도시락에 더불어
알미늄으로 된 둥근 찬합에 밥을 듬뿍 담고

김치나 콩잎 담은 거 그런 반찬을 한 귀퉁이에 담아
첫차를 타러 나서는 통학길과 같은 시간에 산으로 오르십니다.

"핵교마치거들랑 새기 오니래이~"
그런 주문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뭐 딱히 수입원이라고 별 게 없던 시골의 초봄은
5일을 주기로 열리는 장날에 그 무엇이라도 장만하여 내다팔아야
어물(생선) 이나 육괴기(고기)를 끊어 올 수 있었기에
밭에서 겨울살이(겨울초)나 달래이 뜯고
산에서 딴 두릅과 밭언저리의 가죽,엄나무순 이런 것들을  정갈하게 장만해서

장길에 나섭니다.

학생들과 함께 첫차를 타야하니 장날만큼은 늘 비좁고 장거리들도 많아
빼곡히 들어차 발디딜 틈도 없어 힘들었고
얼굴만으로도 누구네 엄마인지 짐작이 될 정도였으니
더러는 행색이 부끄러웠던지 아닌 척 눈을 돌리는 아이들도 있었더랬습니다.

장날의 저녁밥상은 평상시와는 다른
약간 설레임을 즐겨도 좋을 야릇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웃 담장을 넘어 흘러나오는 생선굽는 냄새도 그렇고
기름 둥둥뜨는 괴깃국도 허뿌연 김을 푸루푸루 내뿜으며 끓고 있음을
벌렁거리는 코는 알고도 남을 일이었습니다.

요즘에야 흔한 것이니 딱히 감각에 이끌리지 않을 것이나
그 당시에는 솔내음 풀내음이 아니고서는
이런 특별한 냄새가 유별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냄새로 먼저 흡입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머릿속에 상상하는 두번째에 이어
번들거리며 눈앞에 놓여진 기회에 침을 꼴까닥 삼키는 세번째를 거쳐
최종적으로 입에 넣어 혀에 맞닿는
희열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행복이었기에

집집이 자녀들이 여럿이라 보자마자 서로 앞다투어 젓가락질이 시작되고
이를 능히 아시는 어른들께서는 남겨서 양보하시곤 하셨으니
곁부분부터 살굼살굼 애끼고 애껴가며 먹었던 날이었습니다.

우중충한 겨울날 외투같은 소나무숲 사이를 비집고
연록의 새잎들이 고개를 내밀어 반짝일때면
꼬사리 참나물(취나물)이 묵은 솔잎들을 밀치고 솟아오릅니다.

이른 아침부터 산으로 오른 엄마들은
그간 밟고 다닌 경험으로 만든 지도에 따라
서로 좋은 자리, 혼자만의 자리를 향해 걸음이 바쁘시고
온 식구의 먹거리 장만을 위한 고귀한 것들이라
숨죽이며 뜯어담느라 해가 중천인지 넘어가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고
찬합에 든 밥을 떠넘기는 시간조차 아깝지나 않았는지는
어두울 무렵 찬합통 달각거리며 이고 지고 오는 묵직한 보따리를 받아들고서야
온산을 헤메다니셨을 걸음걸음을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늦은 저녁 어두운 부엌에서 밥을 짓고 마늘까고 찧고 비비고 무치고 해서
먹고나면 대청마루 가득 펴서널어 잡티를 골라내는 선별작업까지 하고나면
새들도 잠들어 침묵만이 흐르는 깊은 밤이 되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피로가 제대로 풀리기나 하셨을까?
속절없이 날은 밝아 또 하루가 시작되니 이른 아침 소죽을 끓이시는 가마솥에
다듬었던 고사리를 얹어 쪄서는 잘 마르도록 흩뿌리며 널고 계실 쯤
"어이 누구어마이야 와 안직 안나오노"
카시는 소릴 들으시고는 또 산으로 향하셨습니다.